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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 예수께서 우셨다 (요한복음 11:1~4, 38~44)2016.04.21 09:53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 요한복음 11:1~4, 38~44
가 책에 빠져 있는 동안 친구는 내가 무엇을 읽고 있나 보려고 허리를 구부리는 즉시 뒷걸음치더니 기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무슨 제목이 그렇게 우울해”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림 동화》에 나오는 “유리관”을 읽고 있었는데, ‘관’이라는 단어가 그녀를 불안하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죽는 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1,000명이 있다면 1,000명이 다 죽는 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언제나 깊은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예수님도 사랑하는 친구의 장례식에서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빠가 며칠전에 죽은 마리아를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요11:33). 다른 번역은 “심한 분노가 그 속에서 솟아났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통히 여기시고 분노하기까지 하셨습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러셨을까요? 아마도 주님은 죄에 대하여, 그리고 죄의 결과에 대하여 분노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질병이나 고통, 죽음으로 가득 차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죄가 세상에 들어와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망쳐놓았습니다. 주님은 슬픔에 잠긴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슬픔 가운데 우리와 함께 우십니다(35절).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죄와 사망을 이기셨습니다(고전15:56~57).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라고 약속해주십니다. 신자인 우리는 지금 우리 구주와의 교제를 즐기면서, 더 이상 눈물이나 고통, 질병, 죽음이 없는 곳에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지내게 될 것을 기대하며 바라봅니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고린도전서 15:56~57
그리스도의 빈 무덤은 우리가 죽음을 이겼다는 사실을 보장해준다.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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