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예레미야 181-1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당신의 주권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흔히 어떤 대상에 대해 내 손안에 있다고 종종 말합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사람들의 뇌리에 떠오르는 이야기는 손오공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 명나라 때에 집대성하여 지은 서유기에는 손오공이 삼장법사의 제자가 되기 전 원숭이들의 왕이던 때에 많은 도술을 익혀 하늘나라를 소란스럽게 하다가 부처님과 도술 내기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손오공은 단번에 108천리를 날수 있다는 근두운을 타고 날아가 커다란 기둥 다섯 개가 있는 곳에 이르러 거기다가 제천대성 여기에 이르다.”라고 쓰고는 오줌을 눈 뒤 되돌아와서는 하늘 끝까지 갔다 왔다며 그의 능력을 자랑 하였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그 기둥들이 당신 손가락이고 손오공의 능력이 자신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보잘것없는 것임을 말했습니다. 절대자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말할 때 이 이야기는 뛰어봤자 벼룩이라는 말과 함께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해 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손바닥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본문이 무엇이라 말하는지 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절과 2절을 먼저 읽겠습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주리라 하시기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토기장이들은 예루살렘 서쪽을 흐르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있었습니다. 왜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토기장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는 도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10회 이상 토기장이를 하나님의 주권과 관련하여 언급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서 459절은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고

 

로마서 921절에서도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토기장이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에 그에게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에 갔을 때 약속하신대로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먼저는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3절과 4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예레미야는 토기장이가 녹로로 토기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토기장이의 손에서 만들던 그릇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마치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에서 페트릭스 웨이지와 데미 무어가 그릇을 만드는 중에 그 그릇이 망가졌던 장면과 같은 것입니다. 토기장이는 자신이 만들던 그릇이 터지자 그것으로 자기가 원하는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신 것은 토기장이와 흙의 관계에서 토기장이가 원했던 것을 만들려다가 그 흙이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뭉쳐 다른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향한 토기장이식의 주권을 행하실 것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5절과 6절에서 이 상황과 관련하여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5절과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다가 그것이 터지면 다른 그릇을 만드는 권리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그릇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너희라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터진 그릇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터진 그릇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들이 터졌다는 것은 온갖 죄와 우상숭배를 저지를 뿐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난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이사야는 이사야서 5장에서 포도원의 노래를 통해 말했습니다. 그 노래에서 하나님은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기대했는데 그들은 들포도를 맺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얼마나 진지하게 기다렸냐면 열매가 맺혔을 때를 대비하여 망대를 만들고 그것을 수확할 것을 기대하며 술틀을 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그릇이 터졌을 때 토기장이는 다른 그릇을 만들었듯이 하나님은 포도원의 담장을 허물어 짐승들에게 먹힘을 입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5장에서 우리들을 향한 기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으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라고 완료형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빛과 소금으로 정의 된 존재답게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기록된 성령이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5:22-23)를 맺어야 하는데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5:19-21)의 열매를 맺고 있다면 그것은 본문의 말씀처럼 터진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터진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듯이 터진 이스라엘과 터진 우리들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은 토기장이가 다른 그릇을 만들 듯이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복주시겠다고 했던 처음의 계획과 다르게 대할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 대하여 7절부터 1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7절부터 10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이 본문의 말씀은 어느 민족이나 국가도 동일한 원리로 대하시는 것입니다. 처음에 복 주시기로 했지만 그들의 행위가 바르지 않고 돌이키지도 않는다면 뜻을 돌이켜 심판하시겠다는 것이고 반대로 심판하려는 계획 가운데 있었다 하더라도 회개하고 온전히 행하면 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하심은 본문 말씀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아합왕을 아실 것입니다. 아합은 두로의 공주였던 이세벨과 결혼하면서 바알신앙을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에 들어오게 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여호와가 아니라 바알이었습니다. 그러한 때 하나님은 아합을 죽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아합이 겸비하고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심판하시려는 계획을 취소하셨습니다.(왕상21:29)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하나님이라고 섬길 때 하나님을 그들을 멸하려 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심판하시려는 계획을 철회하셨습니다.

 

반대로 복 주시겠다고 했지만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심판하셨던 사건도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민족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복을 약속받았던 백성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오랜 심판 가운데 들어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말씀하신 주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회개를 선포하셨습니다.

11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토기장이가 다른 그릇을 만들 듯이 하나님은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을 치실 계획을 세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즐거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들이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은 재앙의 말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말은 빨리 돌이키라는 경고나팔 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지 않으면 그것은 재앙의 말이 되지만 그 말을 듣고 돌이키면 그것은 당사자에게 유익을 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이 소리가 들려집니다.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고 지금 가려는 길은 바르지 않은 길이라고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진정으로 복이 있는 자입니다. 일상의 소리나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복과 돌이킬 수 있는 용기를 얻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돌이키라고 쉼 없이 말씀하심에도 그들은 더욱 강퍅해 져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여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계속해서 짓고 심판 받게 된 원인이 본 절에 있습니다.

먼저는 주님의 말씀을 헛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헛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아쉬라고 하는데 이는 소망이 없다. 절망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절망하고 소망이 없다고 여기는데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소돔과 고모라 멸망 할 때에 롯의 두 사윗감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소리를 농담으로 여겼다가 그 성과 함께 죽었습니다.

또한 엘리사 때 아람군사에게 사마리아가 포위되어 죽음의 위기에 있을 때 자신을 잡으러 온 장관에게 엘리사는 곧 놀라운 회복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왕하7:1)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장관은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 장관은 다음과 성문을 열다가 백성들에게 밀려 넘어져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헛되게 들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대로 행하였습니다.

 

인간의 계획은 허무한 것입니다. 썩은 갈대에 몸을 기대고 서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자신의 계획대로 행한다는 말은 인간의 계획과 힘을 의지하여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미련한 일인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175절에서도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께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222절은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라고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스라엘은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냥 마음대로 행한 것이 아니라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했다는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했다는 것은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로가 강퍅하게 행하여 이스라엘의 노역을 더 고되게 시켰던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렇게 강퍅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이해하지 못하신다고 하시며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13절부터 17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지 여러 나라 가운데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바위를 떠나겠으며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무릇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들의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하게 하여 그들의 땅으로 두려움과 영원한 웃음 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의 머리를 흔들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 앞에서 흩어 버리기를 동풍으로 함 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바위를 떠나겠으며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14) 하십니다. 레바논은 갈릴리 북편에 높이 솟아있는 산맥인데 만년설로 인하여 차고 시원한 풍부한 물이 사시사철 마름이 없이 흘러내렸던 것입니다. 이를 하나님의 변함이 없으시고, 다함이 없는 사랑과 은혜에다 비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저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 분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2:13)를 선택한 격입니다. 이처럼 어리석고 미련하게 행한 족속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는지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들의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하게 하여(15)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옛길과 곁길이 등장하고 있는데 성경에는 길이 있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계시해주고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옛길이란 하나님께서 창세기로부터 보이신 일관된 구원의 길이요, 그 옛길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여호수아와 다윗 등 선진들이 걸어간 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14:6) 하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이를 알았기에 바울 사도는 복음을 십자가의 도(고전 1:18)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이 길 외에는 구원의 길이란 달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녀 이스라엘은 그 옛길을 버리고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 죄의 길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땅으로 두려움과 영원한 웃음 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의 머리를 흔들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 앞에서 흩어 버리기를 동풍으로 함 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얼굴을 보이지 않겠다는 말씀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지 아십니까? 다윗은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30:7)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비취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그 이유를 724절에서는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먼저 하나님께 등을 향하고 얼굴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옛길을 버리고 곁길로 행한결과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본문에서 한 가지를 더 말씀 해 주고 있습니다.

18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

 

이 구절은 예레미야가 사람들에게 살해 위협을 당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치 않았을 뿐 아니라 선지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선지자를 죽이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의 육신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러한 방법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된 원인은 지금까지 말씀 드린 네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여기고 자신들의 계획대로 행하며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선지자를 죽이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당신의 손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여 말씀하심으로 그 죄에서 돌이켜 복된 길로 가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반대로 우리들은 들에 풀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 같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은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살아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는 자들임을 알고 그렇게 행하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입술과 삶으로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신 일을 간증하고 기쁨과 감사로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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