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헐라

요한복음 213-22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생명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성전에 하나님께서 거하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기 전 광야에서 성막이 먼저 세워졌습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것을 상징하는 법궤가 있었고 그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행진하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때에 예루살렘에 성전에 세워졌습니다. 솔로몬의 기도대로 하나님께서 거기 거하시면서 그곳에서 기도하면 응답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 해 계신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을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성전이라는 껍데기만 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곳에서 우상 숭배가 성행했고 형식적인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결국 솔로몬성전도 바벨론에 의해 무너지고 그 후에 다시 지어진 스룹바벨 성전도 헬라에 의해 오염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에돔계 유대인이었던 헤롯이 성전을 증축하게 되었습니다. 주전 20년부터 주후 63년경까지 약 80여 년간 건축되었습니다. 그 건축 기간 중 예수님은 46년째 되던 해에 오늘의 사건을 벌이신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가까운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네 영역으로 구분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만나는 뜰은 이방의 뜰, 다음 뜰은 여인들의 뜰, 세 번째 뜰이 유대인 남자들이 들어갔던 이스라엘의 뜰,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가 한 건물로 지어진 장소인 제사장의 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첫 번째 뜰에 들어서셨을 때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만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양과 소를 팔았고 어떤 이들을 비둘기를 팔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방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성전에 세금으로 드리거나 예물을 드리기 위해 유대인의 동전으로 바꾸어주는 일을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성전의 고요함과 경건함은 온데간데없이 없어 졌고 소란함과 이익을 더 보려는 세속적 욕망만이 가득한 뜰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그것들을 내어 쫓으셨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노를 발하고 계실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보이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가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은 다시 말하기를 이 성전은 46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3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건을 기록한 요한은 성전 된 예수님의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며 이어 말하기를 자신들도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에야 알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듣도록 합시다.

먼저는 예수님은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세 번 지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64, 그리고 1155절입니다. 요한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초막절 기사를 한번 기록하고 유월절의 절기에 아주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던 날 장자를 대신하여 어린양을 잡아먹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마다 죽음의 사자가 넘어 간 것을 기념하며 지켰던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일 년에 세 번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을 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절기 중에 유월절에 집중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성전에 가셨을 때 벌어진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의 주인, 성전의 주인으로 이 자리에 서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유대인의 유월절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이방인들에게 이해를 구하기 위해 사용했을 수도 있지만 다른 의미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도들이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절기가 아무 의미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셨고 그 살과 피를 먹고 바른 성도들에게는 이미 사망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지으리라고 하시며 해석해 주기를 이는 예수님의 몸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을 우리를 위해 주셨고 그 결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유월절에 성전에 오신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14절부터 17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향해 진노를 발하셨습니다. 여기서 성전은 성소나 지성소가 있는 건물을 말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헬라어 히에론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성전과 관련된 부속 시설 모두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와 다른 단어는 나오스라는 단어인데 19절부터 나오는 성전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성전 자체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장사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파는 장소는 성소가 아니라 성전의 전 영역들 중 이방인의 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책망하셨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편리주의에 빠지게 했고 제사장들과 결탁해 폭리를 취했습니다. 이미 구약 율법에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가지고 와서 제물을 사서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었기에 와서 재물을 사는 것 자체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장사하는 자들과 제사장들이 결탁해 자신들이 파는 재물만을 흠이 없는 재물로 통과하게 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집에서 정성껏 구별해 온 재물은 모두 불합치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기에 힘들게 집에서부터 재물을 가져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거부당할 것이었기에 성전에 와서 구입하셨고 제사 드리는 자의 성의도 기쁨도 모두 빼앗는 짓을 했던 것입니다.

 

물건을 울며 겨자 먹기로 샀던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물을 기쁘게 드리는 마음을 빼앗겼고 제사장들과 상인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이익을 남기는 일에만 혈안이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시며 쫓아내신 것입니다.

 

이 시대 주님께서 현대 교회에 오신다면 어떠실까요? 흡족한 마음으로 교회 안에 거하실까요? 아니면 채찍을 만들어 우리를 치시고 내어 쫓으실까요? 많은 부분 이 말씀을 교회 내에서는 장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런 말씀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교회 내에 세속적 가치관과 경건의 모양을 갖추고 신앙을 이익의 재료로 삼고자 하는 모든 것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다는 무슨 말일까요? 이 말은 우리의 종교적 행위, 즉 말씀을 전하거나 기도하는 것, 봉사나 섬김 등의 종교생활이 자신의 명예나 그것을 통해 세속적인 것을 얻고자 하는 모든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역자들의 수고가 돈 때문에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들이 교회생활을 통해 성도들 중 세상의 힘 있는 사람들에게 줄을 대려는 것을 말합니다. 장사를 위해 큰 교회에 다니며 그 관계성으로 수익을 늘리려는 모든 행위입니다. 이러한 행위가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러한 생각들을 내어 쫓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어 쫓지 않으면 주님께서 채찍을 들어 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메시야로 선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심으로 성전은 자신의 집이라고 한 것입니다.

 

나아가 자신의 몸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주님은 서신서를 통해 예수님의 영을 모시고 사는 성도의 몸을 성전이라고 하셨음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더럽히면 주께서 채찍을 드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죄의 도구로 사용하고 음행과 향락을 위해 사는 것도 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1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진노하신 것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주님과 대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7절에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라는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행하신 일로 인하여 유대인들의 미움을 사고 결국은 예수님을 잡아 죽일 구실을 하나 더 만들어 주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면서 했던 고발의 내용 중 하나가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행하는 표적을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18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이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지자에는 표적이 따랐고 메시야에는 선지자 이상의 표적이 따른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 예수님의 파격적인 행보에 합당한 표적으로 보여 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들을 만족시켜 줄 표적을 보이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시라면 표적을 보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삶에 놀라운 복을 주시든지, 자신에게 특별한 일이 벌어지게 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자신에게 보이기를 원합니다. 또한 이에 놀아나는 사역자들이 있어 점쟁이 짓을 하려하고 기적을 행하는 것이 참사역자로 보일 것이라 여겨 그것에 목을 매는 이들이 많은 것입니다. 이들은 어떤 기적이 벌어져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도 잠시 놀랄 뿐 또 더 놀라운 것을 요구하고 그것이 만족할 만큼 채워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게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질문에 대해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대답을 하고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당연히 이 말씀은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도 주님께서 부활 하신 후에야 이 말씀을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렇게 어려운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먼저는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어떤 표적을 주어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표적 외에는 더 이상 큰 표적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표적을 구한 일은 이번 한번 만이 아니었습니다. 갈릴리까지 찾아온 유대인들인 예수님께서 하늘로서 온 표적을 보이라고 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16:4)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도 동일하게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 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표적을 보이라고 한 모든 불신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이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표적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반응하였습니다.

20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사실 육신적으로만 보면 예수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주전 20년에 시작하였고 주후 63년경에 완성되었습니다. 거의 8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었고 그 중에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주후 27년경이었기에 유대인들은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짓는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면 믿지 못하는 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에 우리의 모든 죄는 사하여 졌다고 말하면 그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을 뻔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방법은 그 방법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성령께서 조명해 주시지 않으면 그들은 그 누구도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화와 후반에 요한은 해설을 붙이며 설명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21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말씀하신대로 자신의 육체를 부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성전의 휘장이 갈라져 성소와 지성소의 구분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1019절과 20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유월절에 찾아오신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오늘 제목이 성전을 헐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 바르지 않은 성전을 헐어야합니다. 복음의 본질은 사라진 채 외형만 화려해 지고 거대한 건물과 넘치는 프로그램과 복음이 없는 예배, 하나님의 영광이 빠진 자기만족을 위한 헌신과 재미있는 교회 생활이 하나님과 동행이라고 착각하는 모든 것들을 헐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만이 온전히 살아나고, 예수님의 생명만이 우리 속에서 살아나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삶 속에서 드러나는 이 새 일이 벌어져야 합니다. 이 시대의 거룩한 성전은 건물의 교회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모신 성도와 그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시대의 교회 개혁은 한두 가지를 청소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한두 가지를 바꾸고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으로 완전히 대체되어야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대 우리의 성전은 어떠합니까?

성전 - 우리의 육체

성전 - 교회 공동체 -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멸해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를 더럽히지 말아야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더럽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파당은 나누고 세상에서 온갖 더러운 짓을 행하며 교회를 드나드는 것으로 위안 삼는 모든 행위가 교회 공동체를 더럽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8장에서 예레미야는 당시 성전을 가리켜 도적의 굴혈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세상에서 온갖 짓을 하고 성전에 와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자신의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떳떳하려 했던 것 때문입니다.

이 시대 우리들도 우리의 교회 공동체를 도적의 굴혈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의 채찍과 분노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들리지 않습니까? 그 소리를 듣고 돌이켜 그분의 채찍을 맞지 않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르므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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