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대하여

데살로니가전서 516-18

 

12절부터 18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2절과 13절은 사역자를 대하여 존중하라고 말했고 14절과 15절은 형제를 대하여 오래참고 선을 행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자신을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아주 많이 알려져 있고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오늘 이 구절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뜻이 무엇인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 구절은 헬라어 원문에서 판토테 카이레네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판토네라는 말을 우리 말 성경은 항상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항상이라고 번역한 판토테라는 말은 파스라는 헬라어를 어근으로 두고 있습니다. 파스라는 단어는 모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이라는 말은 모든 상황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원하는 일이 성취되었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나 슬프고 고달플 때도 기뻐하라는 것이 항상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항상 기뻐하는 일은 가능한 것일까요? 사업이 망했는데 기뻐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죽었는데 기뻐할 수 있을까요? 자녀가 크게 다쳤는데 기뻐할 수 있을까요? 나라가 망했는데 기뻐할 수 있을까요? 절대로 인간은 그럴 수 없습니다. 기뻐할 수 없습니다. 슬퍼하고 낙담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도리어 그러한 상황 속에서 기뻐하는 것은 이상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 답은 사도바울이 기록한 빌립보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때는 로마감옥에 갇혀있던 때였습니다. 그런 그가 빌립보교인들을 향해 기뻐하라고 말한 성경이 빌립보서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혀있지만 그 일로 인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고 있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고 배고픔과 비천에 처해도 기뻐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 받은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고난에 대해 고린도후서 1123절부터 27절에서 말하길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빌립보서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삶에 대한 가치나 목표가 이 땅의 것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7절과 9절에서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314절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고 했고 320절에서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 땅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날을 소망하며 살았기에 이 땅의 것에 영향 받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땅의 것이 주는 어려움과 아픔, 고난과 슬픔 등을 넘어 항상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이런 자세는 죽는 날까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형을 언도받고 기록한 디모데후서에 죽음 앞에선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 지어다”(딤후4:18)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형을 언도받고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그 속에 있는 소망과 기쁨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도 이 땅에서 당하는 수많은 환란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서신 15절부터 7절에서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고난을 당하면 잠간근신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곧 기뻐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 환란이 성도를 성도답게 하여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이유에 대해서도 본문에서 말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수많은 어려움과 아픔이 있지만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으며 최종 목표가 하늘나라이고 그 모든 환란이 도리어 우리를 그리스도인답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나아가 주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분명이 인식함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잃지 않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자신을 대하여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1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618절에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예수께서도 누가복음 181절에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로마서 121절에는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24시간 입술을 움직이고 무릎을 꿇고 기도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고 제자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하나님과 늘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기도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란 무엇일까요?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영혼의 호흡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인 것입니다. 기도를 잘한다고 할 때 잘하는 것은 쉼 없이 말을 하는 것을 잘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잘하는 것은 하나님과 소통을 잘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라디오 틀어놓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쉼 없이 하나님께 아뢰라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대화하는 자세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삶의 매 순간마다 주님께 묻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여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알고 그대로 살 수 있는 힘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 하셨을 때 그 기도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은 삶 속에서 하나님과 채널을 맞추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그의 백성들에게 알리셨습니다. 그것은 동행입니다. 에녹도 동행했고, 미가에게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도한다고 하는 모습의 기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기도, 공예배 기도 등입니다. 예수님도 아침과 저녁에 기도하셨고 모든 사역에 기도로 하셨습니다. 다니엘도 죽을 줄 알지만 기도했고, 사무엘도 백성들을 책망하면서도 그들을 위한 기도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도 그러했으며 사도들도 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삶 속에서 하나님과 채널을 맞추고 동행하는 삶의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앉아 기도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기도의 대상과 중보와 도움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기도의 대상은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중보는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기도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스스로 정하신 질서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도 이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알고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은 공급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자신에 대하여 할 일인 것입니다.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세 번째로 성도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할 때 범사모든이라는 뜻의 헬라어 파스입니다. 이미 항상 기뻐하라고 하는 말에서 나왔던 단어의 어근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라는 말은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욥이 1차 시험을 당했을 때 했던 것이 범사에 감사입니다. 욥은 고백하기를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 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찬송한 것이 범사에 감사입니다.

 

사도들이 성령이 임하고 난 후 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던 중 베드로와 요한이 평소처럼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미문 가에 앉아있는 앉은뱅이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운 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지만 사도들은 예수님을 반대했던 세력들에게 의해 잡혀 핍박을 당하고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자 그들은 사도들을 잡아 채찍질하고 놓아주며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에 사도들이 나오면서 어떤 감정이었는지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하기를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블레셋에 피했을 때였습니다.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은 다윗이 자신의 수하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블레셋의 신하들은 다윗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왕과도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나아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미친척하여 그곳을 빠져 나오게 되는데 이 때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감사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6절과 7절에서 감사와 그 유익에 대해 말했습니다. 말씀하시기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범사에 감사합시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당신의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만족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됩시다.

 

그런데 왜 하나님 성도들에게 성도 자신을 위하여 이 세 가지를 하라고 명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이 세 가지가 성도가 성화되어 가는데 아주 중요한 내적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며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어떤 결과가 주어져도 감사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성도를 성도답게 하시는 훈련을 잘 받게 되고 성화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원하시는 것을 정리해 봅시다. 사역자를 대하여는 존중하여 믿음의 형제들을 대하여는 오래참고 선을 행하며 자신을 대하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의 우리를 향한 뜻인 줄 알고 그렇게 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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