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 마태복음 23:37-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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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맨 아저씨, 왜 우세요?” 열두 살의 알버트가 나무상자를 만들고 있는 목공 장인을 보면서 물었습니다.
그는 “내 아버지가 울었고 내 할아버지가 울었기 때문에 나도 운단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수가 어린 견습생에게 대답해주는 그 모습은 ‘초원의 집’ 방송의 따뜻한 한 장면입니다. 싱어맨은 “관을 만들다 보니 눈물이 나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어떤 남자들은 우는 것이 나약함을 나타내는 것이라 해서 울지 않지만, 나는 ‘남자는 울 수 있기 때문에 남자다’라고 배웠단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염려하는 마음이 암탉이 그 새끼를 돌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의 눈에 감정이 북받쳤을 것입니다(마태복음 23:37). 예수님의 제자들은 종종 예수님의 눈에서 본 것이나 그가 하신 이야기에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강하다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성전에서 나올 때 비슷한 일이 다시 발생했습니다. 제자들은 성전 건물의 웅장한 돌벽과 화려한 장식들에 예수님의 시선을 끌려고 애쓰면서(24:1), 인간의 대단한 성취 능력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서 서기 70년에 무너져내릴 성전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들은 언제 왜 울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무엇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염려하시고 성령님이 신음하시기 때문에 우셨습니다.
◈ 당신은 인생의 어떤 상황에서 슬픔을 외면할 것 같습니까? 눈물을 흘리시는 구주(요한복음 11:35)를 믿는 믿음이 어떻게 당신의 슬픔을 건강하게 표현하게 해줍니까?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 마태복음 23:37
하나님 아버지, 제가 버리지 못하는 힘에 대한 차가운 환상 대신,
저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돌보심과 염려를 날마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