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와 나훔서가 허구라고?
제가 어릴 적 성경 속 인물과 헷갈렸던 사람들이 둘 있었습니다. 먼저는 삼손과 헤라클레스가 힘이 셌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헷갈렸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요나와 피노키오였습니다. 이 둘은 분명히 사람과 나무인형으로 차이가 나지만 그럼에도 헷갈렸던 것이 둘 다 말 안 듣고 배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고기 뱃속에서 고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친근했던 요나의 이야기는 교회 어린이 관련 책에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로 쓰입니다. 그런데 이 요나서가 1840년대 이전에는 실재한 이야기가 아니라 허구라고 생각되어졌었습니다. 문학정도로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이나 있었고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요나를 지켜주었던 박 넝쿨을 벌레가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등의 이야기는 문학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또한 요나서와 나훔서에 나오는 니느웨를 찾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심하게는 니느웨 유적 위에 서있으면서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나폴레옹도 자신의 발밑에 니느웨를 놓고도 찾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신학계에서 조차 요나서와 나훔서는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허구라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성경이 사실에 근거한 말씀인 것이 드러나는 사건이 이었습니다. 1840년대 초 지금의 모술 땅인 니느웨 지역에 프랑스 영사관이 들어섰습니다. 영사로는 폴 에밀 보타가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의해 니느웨가 발굴되었습니다. 그는 원래 고고학자가 아니었고 원래 직업은 의사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니느웨를 발굴하게 된 이유는 그가 프랑스를 떠나 올 때 독일의 아시아학자 줄리우스 몰이 부탁한 말 때문이었습니다. 줄리우스 몰은 보타에게 “대영박물관에 가면 메소포타미아에서 구해온 벽돌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화살촉이나 못 모양을 한 설형문자(쐐기모양 문자)가 새겨져 있소. 아마도 수천 년간 땅 속에 묻혀 있는 엄청난 문명을 풀 실마리가 될 겁니다. 그러니 모술에 가거든 설형문자가 새겨진 벽돌을 찾아보고 가능하다면 거기 널린 둔덕들을 파보시오. 니느웨가 거기 묻혀 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보타는 주변을 조사했고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인 레이야드, 로린슨이 합류하여 이 지역을 발굴하여 찬란했던 이 성의 유적을 찾아냈습니다. 특별히 영국인 오스틴 헨리 레이야드는 파리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보냈는데 그때 레이야드는 ‘아라비안나이트’와 ‘바빌로니아 여행기’를 읽었고, 아버지를 따라 미술관들을 돌며 미술품 보는 눈을 키웠습니다. 레이야드는 스물두 살 때 런던의 법률사무소를 벗어나 무작정 아시아로 갔다가 보타를 만나 이 일을 주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14m를 파내려 갔을 때 유적이 드러났습니다. 그 일로 인해 그 동안의 모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허구라고 생각되었던 요나서와 나훔서는 진실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 때까지 학문적으로는 이집트가 인류의 발상지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일로 창세기의 창조기사들을 비롯한 성경의 기록들이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성경에는 니느웨라는 말이 20군데 나 나오고 앗수르라는 말이 132군데에 나오는데 이곳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앗수르 제국도 니느웨도 전설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 니느웨가 발굴되면서 기독교인들과 학자들은 흥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발굴하며 성경이 진리임을 증명하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니느웨는 그토록 깊이 묻혀 있었던 것일까요? 2600여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14m까지 모래가 덮였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훔서를 보면 니느웨를 가리켜 물의 성읍이라고 하고 있으며 무너질 때 범람한 물로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훔이 니느웨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고 얼마 후 이 성은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너졌을까요? 당시 니느웨를 수도로하여 다스렸던 앗수르에게 지배를 받고 있던 나라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바벨론과 메디아(성경에서는 메대)가 연합하고 마사게타이 족이 합세하여 니느웨를 공격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니느웨의 성둘레는 약130km, 성벽은 30m, 성벽의 넓이는 4대의 전차가 횡으로 달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성벽 위는 1,200개의 수비탑이 있었고, 성 주변에는 방어용 수로가 42m의 넓이와 18m의 깊이로 흘렀습니다. 요나서에서도 이 성의 크기를 짐작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니느웨를 가로지르는데 3일이 걸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큰 성을 직접적으로 공격해서는 승산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용한 방법은 니느웨 상류에 지류마다 만들어 놓은 댐을 동시에 터트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니느웨는 성 주변의 해자를 유지하고 성이 범람하는 물에 해를 당하지 않도록 댐을 만들어 수위를 조절하고 있었습니다. 평화 시에 이 댐들은 니느웨의 가장 중요한 방어수단이었지만 이 때는 그들을 무너뜨리는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무너진 니느웨는 시간이 흐르면서 물길을 막는 걸림돌이 되어 장시간 퇴적물이 쌓였던 것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 했던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