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보다 나은 사랑

아가 1:1-2

유대인들은 아가서와 에스겔서를 성인이 되기까지 아이들은 읽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일명 금서입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개의 성경은 모두 남녀 간의 진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거나 성적 묘사가 노골적으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은 어린이들이 이 성경을 읽는 것보다 읽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아가서는 강단에서 그렇게 많이 설교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의 신체의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들면서 노래하고 있는 부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부터 아가서의 모든 부분을 하나씩 하나씩 드러내어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때로는 상징적인 언어이어서 논란도 있고 때로는 너무 노골적 성묘사이기에 얼굴이 붉어질 때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우리의 사랑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므로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와 성도 간의 사랑을 더욱 풍성히 이해하고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쓴 1005개의 노래 중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아름다운 노래’, ‘아가’입니다. 원제목은 ‘The song of songs', ‘노래 중의 노래’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아가서를 자세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노래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떠나 생각해도 얼마나 아름다운 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서는 번역의 난해함과 상징성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생각하며 읽으면 그리 어려운 성경은 아닙니다. 또한 그 번역의 난해함이란 대화체로 되어있는 성경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한 말인지에 대해 주석을 달아 놓지 않아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낯 뜨거운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기록하여 구약 성경 안에 넣어 우리에게 전해 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로 하여금 가장 가깝고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가서를 대할 때 이 땅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성도들의 간절한 사모의 마음과 모든 장벽을 초월한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사랑을 인간이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측면에서 느낄 수 있도록 비유로 표현된 사랑의 노래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가서와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이상한 성경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이 은유로 표현하는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상징적 언어를 통해 그리스도의 속성과 사랑에 대해 강력하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아가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려줍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와 우리의 사랑의 관계에 대해 비유적으로 표사함으로써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총 여덟 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덟 장은 이성이 만나 진정한 사랑으로 진행되는 시간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1장은 연애, 2장은 구애와 허락, 3장은 축가, 4장은 신혼여행, 5장은 신랑 거부, 6장은 재회, 7장은 사랑의 노래, 8장은 영원한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서 그리스도와 우리가 어떤 사랑의 관계인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자는 1장 1절에서 ‘솔로몬의 아가라’라고 기록하여 저자와 제목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가’란 노래 중의 노래라는 비교급 용어로서 가장 탁월한 노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노래는 솔로몬의 인생 속에서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깨달은 사랑의 진리인 것입니다. 2절부터 7절까지의 말씀은 사랑에 빠진 술람미 여인의 노래입니다.

여기서 솔로몬과 술람미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언어유희의 심오한 메시지를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솔로몬은 ‘평화의 왕’입니다. 그리고 술람미는 ‘평화의 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평화의 왕과 평화의 딸이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를 들으면서 순발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 이름에 곧 대입되는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성탄절에 자주 언급되는 말들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과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는 구절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평화의 왕과 평화의 딸의 사랑의 노래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과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즉 평화의 딸인 성도들이 나누는 사랑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유월절의 마지막 8일째는 아가서를 봉독했고 아가서는 성막의 지성소를 상징했습니다. 즉,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우리가 휘장을 지나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것을 기록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술람미 여인은 첫마디에서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2절)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이 구절을 공동번역 성경은 번역하기를 “그리워라, 뜨거운 임의 입술, 포도주보다 달콤한 임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과의 입맞춤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낫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네 사랑’은 복수입니다. 이를 다시 굳이 문자대로 번역하면 ‘네 사랑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과의 사랑이 풍성함을 표현한 말입니다. 그러기에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사랑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였기에 우리는 그 사랑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너무나 커서 그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처음 만났을 때 내 삶 속에서 역사하시고 은혜 주신 것이 너무나 커 그 은혜와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노래하기를 “내가 그를 먼저 사랑한 것 아니요 그가 나를 먼저 사랑했으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5장은 분명하게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죄인 되었을 때, 연약 할 때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 내어놓을 만큼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로마서 5:6-10)

입맞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 연합입니다.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사랑의 연합, 그것이 입맞춤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입맞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영적인 사랑의 입맞춤이 있었어야 하고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입맞춤은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서도 안되고 현재의 만족으로 끝나서도 안됩니다. 그리스도와의 입맞춤은 영원히 지속되어야 합니다. 과거에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관계가 있었다며 과거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것으로 만족한 신앙생활은 영적 허기짐에 허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의 ‘입맞춤’은 복수입니다. 대부분의 영어번역성경 모두 “Let him kiss me with the kisses of his mouth”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NLT 번역 성경은 “Kiss me again and again”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한 번의 키스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여인은 계속된 사랑의 행위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영원히......, 솔로몬과의 사랑을 한번으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해서, 영원토록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그리스도의 사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의 사랑은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반복해서, 영원토록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과의 사랑의 관계에 성공해야 진정한 행복과 성공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돈을 많이 벌고 성공했다고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성공은 결국 사랑의 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말년이 외로운 사람은 사랑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가장들이 거리로 몰리는 현실은 그들이 사랑에 실패한 인생임을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젊은 날 돈을 벌고 성공하는 것이 최상의 것인 줄 알았습니다. 아내와 자식에 대해 사랑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여유가 생겨 가족과 함께 하려고 하지만 그동안 사랑을 나눈 적 없어 어색하기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더욱기 인간관계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절대적 가치의 사랑인 그리스도와의 사랑에 성공해야 합니다. 교회에 많이 헌신 하고 교회 생활에 열심이지만 그리스도와의 사랑에 실패하면 신앙생활은 공허해지고 건조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생활에 열심인데도 공허하십니까?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만남, 그리스도와 영적 입맞춤이 없어서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와의 영적 사랑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많은 설교자들은 솔로몬이 전도서를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경험하고 고백했다면 아가서를 통해 사랑만이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고백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돈도 명예도 아닌 사랑이 인생을 풍족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사랑이 우리 인생을 풍족하게 합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상황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사랑과 평강,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관계가 맺어지고 풍성해질 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 술람미는 노래하기를 “포도주 보다 나음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과 기쁨을 표현할 때 포도주를 사용합니다. 포도주는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의 대표인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입맞춤을 포도주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은 인생이 줄 수 있는 어떤 기쁨보다 낫고, 세상이 줄 수 있는 어떤 즐거움보다 낫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사랑, 그 사랑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작곡가는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했고,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라고 노래했습니다. 세상에 가진 것이 없어도 육신이 병들어 고통 중에 있어도 주님의 사랑이 있고 그분의 숨결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천국이고 행복이기에 세상의 그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우리가 과연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관계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라면 사랑의 관계는 꿈도 꿀 수 없는 존재가 우리입니다.

이 사실을 에베소서 2장은 분명이 말씀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예전 우리의 모습에 대해 말씀하기를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엡5:5)라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였는지를 말씀합니다. 또한 갈라디아서에서도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갈5: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로마서 3장 23절은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을 스스로 갖출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삶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사랑의 관계 속에 있으면서도 이전에 행하던 대로 행하여 우리의 신분과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이 되는 것은 주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눈이 머셨습니다. 아니 스스로 눈을 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허물이 더 이상 허물로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저 사랑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 무조건적 사랑과 용서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43:25)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 잊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을 자세히 주의하여 보면 주님의 강력한 의지가 내제되어 있는 의지적 표현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해 잊어버려서 기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알고 있지만 기억해 내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단지 우리를 사랑만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실감하고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이제 그 용서와 사랑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계십니까? 주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날마다 실감하고 사시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와의 깊은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피상적으로 아는 그리스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분과 얼굴을 가까이하고 그분과 입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분이 얼마나 가까이 계신 줄 아십니까? 그분은 우리의 작은 신음을 듣고 그것에 응답하실 만큼 가까이에서 귀기울이여 주십니다. 심지어는 우리 속에 거하시기까지 하십니다. 성경은 여러 표현으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나타냈습니다. 성경은 표현하기를 ‘우리 위에, 우리 앞에, 우리 곁에, 우리 안에’라고 함으로써 주께서 함께하심을 우리가 늘 인지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까이 계신 그리스도의 따스한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까? 그분의 얼굴이, 그분의 눈이 여러분과 마주하고 있음을 인하여 심장이 뛰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그분과 한 번도 입맞춤의 경험이 없다면 오늘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거에 한두 번 경험이 있어 그 추억의 부스러기를 먹으며 만족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오늘 다시 그리스도와 입맞춤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제가 소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랑에 흠뻑 취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거나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포도주에 취해 살던 삶처럼 물질에 취하고 성공에 취하고 쾌락에 취하고 명예에 취한 삶이 더 이상 우리의 행불행을 결정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한 풍성한 사랑의 기쁨에 취해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입을 맞추었던 여인처럼 우리도 주님께 입을 맞춥시다. 우리가 주님의 따스한 사랑의 입술, 그 은혜를 기대하듯이 주님도 우리의 사랑의 고백과 입술을 원하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주님과 입 맞추기를 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제게 그 사랑의 입맞춤을 허락하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사랑에 깊이 빠져 포도주보다 나은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에 거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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