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로 달려가리라

아가 1장 3-4절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 아가서 말씀을 보면서 우리 속에 잊어지거나 식어진 사랑의 열정이 다시 타오르는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술람미는 2절에서 솔로몬과의 사랑의 풍성함을 노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와의 입맞춤이 계속되기를 원했고 그 사랑이 너마나 커 포도주보다 더 낫다고 노래했습니다.

이어서 3절과 4절에서도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본 구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내적, 외적 모습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먼저 노래하기를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솔로몬의 외적인 매력과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입니다.

여기서 기름은 당시 중동 사람들이 햇빛으로 인해 얼굴에 기름을 바르거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제거하기위해 사용했던 향기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그 기름을 기억하며 아름답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름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기름 부으심과 그분의 사역입니다. 그리스도란 이름의 뜻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입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겸손하여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그리스도께 임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성령의 기름 부음을 입으시고 기름부음 받은 자로 사역하셨습니다. 구약에 기름 부음을 입은 자는 왕, 선지자, 제사장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기름 부음을 입어 만왕의 왕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 중보하신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시기 위한 선지자로 사역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의 사역은 본문의 말씀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분의 성실하신 사역으로 우리는 그분의 나라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이 삶은 죽어서 뿐 아니라 지금 이미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사역의 처음에 외치시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천국은 바로 ‘바실레이아 투 데우’라는 헬라어로 영어로는 ‘The Kingdom of GOD'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영역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왕이 선하시고 능력 있으시기에 그 나라의 국민은 안전하고 평안한 것입니다. 사탄의 공격에도 안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산성이요 요새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으신 그리스도의 향기로 지극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다시는 동물의 제사를 드릴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분의 제사장으로서 뿐 아니라 친히 제물 되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기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은 말씀하시기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것은 제사장으로서 기름 부으심을 입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4장 15절로 1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기름은 우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에 합당하게 하는 향기로운 기름입니다. 그러기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신다는 의미에서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의 주요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에서 하신 가장 중요한 사역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병자를 치유하심과 죽은 자를 살리심, 물위를 걸으심과 오병이어의 기적 등 수많은 이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기위한 도구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구약의 율법에서 자유하게 하고 생명을 얻게하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전해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당신이 친히 말씀이 되어 주셔서 우리 안에 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말씀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시고 우리 안에서 생명으로 역사하시기에 지극히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몸에 발랐던 기름이 빠른 시간에 퍼져 온 방과 주위에 퍼져 그 향기를 맡는 자들에게 행복한 영향을 주듯 그리스도의 향기는 온 세계에 빠르게 퍼져 그 향기를 맡는 자들의 삶을 행복하게 바꾸었습니다. 그 행복한 삶으로 바뀐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우리를 행복하고 복되게 하기에 술람미 여인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향기롭고 아름답다고 말입니다.

향기는 악취를 제거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기름을 한량없이 부음 받으신 그리스도에게는 죄와 죽음의 악취를 제거하는 생명의 향기가 충만하며 고통과 슬픔의 악취를 제거하는 기쁨의 향기가 충만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나는 생명의 향기에 취할 수 있게 되며, 세상이 주지 못하는 만족과 기쁨의 향기에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기만 하면 그리스도께서 부어 주시는 성령의 향기에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으로 술람미 여인은 ‘그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여인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름은 솔로몬의 인품과 인격의 존귀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에 합한 실제를 지닌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름값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리스도는 그분의 이름에 합당하게 사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이름을 단지 칭호로만 소유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이름의 실제를 지닌 분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예수, 또 하나는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고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두 개의 이름에 모두 합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그분의 인격과 실체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오늘 표현합니다.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이름에 합당하게 행해 주셨기에 우리들은 주님을 사랑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날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복음성가 가수는 이 놀라운 은혜 때문에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뿐예요.’라고 말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로 인해 허드슨 테일러는 ‘교회는 그 심령과 손과 모든 영향력과 소유와 심지어 그 자신의 생명까지 주님에게 드리기를 기뻐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예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까? 정말로 그렇게 고백하십니까? 그분의 은혜가 너무나 커서 그분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하십니까? 이제 이유 있는 고백을 합시다. 남들이 하니까 함께하는 찬양이 아니라 남들이 예수님 사랑합니다. 라고 하니까 따라하는 고백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행해주신 그 놀라운 은혜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술람미 여인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솔로몬에게 ‘자신을 인도하라 그러면 달려가겠다’고 요구합니다.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솔로몬의 침궁으로 데려가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경은 솔로몬이 술람미를 침궁으로 이끄시는 것처럼 되어 있으나 원문은 ‘마쉐케니’라고 되어 있어 술람미 여인이 요청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을 제외한 다른 번역본들과 영어번역들은 모두 ‘나를 데려가 주세요 임의 침실로..’의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침실로 이끌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둘만의 깊은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피상적이고 거리감 있는 관계가 아니라 극히 친밀하여 어느 누구도 그 사이에 들어올 수 없는 온전한 사랑의 결혼관계를 맺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출석하면서 출석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군중심리에 의해 우루루 몰려다니는 신앙생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일반적인 종교생활로 자신을 위로하고 만족하는 신앙생활은 침궁에 들어가지 못한 신앙생활입니다.

솔로몬의 내실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랑받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침궁으로 이끌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한 여인들이 왕의 뒤를 따라 다니며 섬길 뿐 침궁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교회만 드나드는 교인은 주님과의 친밀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주변에서 일반적인 은혜와 위로로 만족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주변인에 머물 수 없기에 술람미 여인은 ‘너는 나를 인도하라’라고 요청합니다. 이는 술람미 여인의 자격으로는 왕의 침궁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그분의 허락과 인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그리스도와 연결하면 이렇게 됩니다. ‘주님 나를 주님의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옵소서.’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깊은 사랑을 나누는 자리는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의 인도가 아니면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요청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 105편 4절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여호와와 그분의 힘을 구하라 그분의 얼굴을 더욱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리석게도 많은 사람들은 주님과의 은혜의 만남을 구하지 않습니다. 구하는 것의 대부분은 돈, 명예, 성공 등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그분에게서 나오는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그분의 얼굴, 그 분 자체를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부산물이 아니라 주님 자체를 구하고 주님을 직접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그동안 구했던 모든 것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람미 여인도 시편기자도 그분의 침궁, 그분의 얼굴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의 침궁, 은혜의 얼굴을 소유시기를 바랍니다. 남들이 주님을 만나고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부러워만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라 본인이 그 은혜의 침방을 소유하여 날마나 주님과의 사랑의 나눔이 항상 있어 천국을 소유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라고 말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도만 해주시면 달려가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 주 동안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달려가리라.’라는 말이 너무나 은혜가 되었습니다. 나는 주님의 인도에 달려가는가? 아니면 머뭇거리며 끌려가듯 따라가나? 나는 지금 주님의 은혜의 인도를 거부하고 세상의 것에 끌려 다니지는 않는지 돌아보았습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부귀와 영화를 못 잊어 돌아보았던 롯의 아내처럼,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선택하라고 그렇게 안타깝게 결단을 요청해야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주님의 은혜의 교제안과 성공과 부귀, 그리고 명예라는 것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주저하고 있지는 않나 돌아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은혜의 자리에 달려갈 준비가 되었습니까? 오라고 하시면 언제든지 세상의 모든 부귀와 명예를 뒤로 하고 은혜를 받기 위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은혜보다는, 주님과 만나는 사랑의 교제보다는 자신의 바쁜 삶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과의 사랑이, 그분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행복, 세상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한번 맛본 사람들은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그것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실 때 주저하지 마시고 문을 여십시오. 혹시나 주님께 너무나 달려가 잃어버릴 것이 생길까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여 주님을 사랑하다가 그것들을 잃어버려도 더 이상 그것들이 우리의 행불행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이는 마치 아주 값진 진주를 만난 사람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팔아 그것을 소유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분토같이 여겼습니다. 가문, 명예, 학식, 재산 등 모든 것을 예수님과 바꾼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달려가야 할 이유에 대해 노래합니다.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말함은 술람미 여인은 그 사랑의 기쁨과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그 사랑이 포도주보다 지남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포도주보다 낫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지남이라’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니제키라’입니다. 이는 ‘기억하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풀어서 번역하면 ‘그 사랑이 포도주가 주는 즐거움의 기억보다 더 기억되기에 기리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람미는 2절에서도 포도주보다 낫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다시한번 노래하고 있습니다. 포도주가 주는 행복한 기억은 솔로몬과의 사랑이 주는 기억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소유하게 되면 세상의 기쁨과 행복이라는 포도주보다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 얻는 행복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지고,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을 누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와 나누는 사랑의 교제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를 믿으시고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4절 마지막에 말하기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누리는 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침궁에 들어가 주님과 동거하고 주님과 동락하는 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를 당신의 침궁으로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가 우리 속에서 날마다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주님께 달려가는 것입니다. 달려가서 그 사랑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상징하는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놀라운 행복과 기쁨을 누리기만 하시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 달려갑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침궁으로 맞이하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함께 갑시다. 그리고 함께 기쁨과 행복에 동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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