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이 필요하다

by 하림 posted Oct 2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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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이 필요하다

 

 

가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한다.“이 땅에 빛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차근차근히 생각해 보면 대충 이렇게 될 것이다. 우선 깜깜해서 앞이 안 보일 것이다. 그 다음에는 광합성(光合成)이 안 되니 식물이 고사(枯死)할 것이다.

 

식물이 없어지니 메뚜기나 여치 같은 풀벌레들이 멸종(滅種)할 것이다. 풀벌레들이 죽으면 먹이가 모자란 포식자(捕食者) 곤충들이 죽을 것이다. 그리고 포식자 곤충들이 죽으면 청설모 같은 작은 동물들이 먹이가 부족하여 죽을 것이다.

 

작은 동물들이 죽으면 독수리 같은 큰 조류들이 죽을 것이고, 큰 조류들이 죽으면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들이 없어 질 것이다. 그 다음에는 사람이 먹을 것이 부족하여 죽게 될 것이다. 이 땅이 점점 황폐화되어서 이 땅은 생물이 살 수 없는 사토(死土)가 될 것이다.

 

창세기 일장에는 천지창조의 대략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생물(生物)을 창조하기 전 우선(于先) 하신 일이 ‘빛‘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처럼 빛은 생물의 근원(根源)이다. 주검 안에는 빛이 없다. 그럼으로 빛이 없다는 것은 생명을 상실했다는 증거(證據)이다. 구약 선민 히브리인들이 하나님께 제사(祭祀)드리는 곳이 장막(帳幕)이다.

 

그런데 장막 안은 상시(常時) 어둡다. 그래서 제사장이 성소(聖所)에 들어가 제사(祭祀)를 드리기 위해서는 그 안을 비추는 빛이 필요한대 왼편에 등대(燈臺)가 있어서 그 역할(役割)을 한다.

 

신약 이후의 시대에는 장막을 교회(敎會)라고 말 할 수 있다. 헬라의 철인(哲人) ‘디오게네스’는 백주(白晝)에 등불을 켜고 ‘아테네’ 거리를 돌아다니며 ‘조국의 위기(危機)를 구할 사람을 찾습니다’ 하고 외쳤다.

 

이 시대 교회인 성도(聖徒)는 ‘시대적 등대(燈臺)’가 되어야 한다. 거대 도시에 전기(電氣)가 차단(遮斷)된 상태를 상상해 보라. 혼란(混亂), 혼돈(混沌), 무질서(無秩序)한 도시가 될 것이다.

 

아무리 화려(華麗)한 구조(構造)로 건설된 도시(*美國의 Las Vegas)라고 해도 사람이 살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빛이 없는 교회를 교회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감각(感覺)이나 감촉(感觸)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삶을 우리는 빗대어 ‘동굴(洞窟) 속의 박쥐‘ 라고 한다.

 

결국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 짐승 같은 인간의 삶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등불의 중요성(重要性)을 자각(自覺)하는 것이다.

 

그럼 성도에게 있어 빛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는 성결(聖潔)의 삶을 말한다. 출27:20-21에는 “순결한 기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는 성결의 삶을 말한다. 성결(聖潔)은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삶이다.

 

상대적으로 양심이 깨끗한 사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은 있다. 그러나 절대적인 선인(善人)은 없다. ‘흠과 티가 없는 삶’은 성령의 역사뿐이다.(*제사장은 육체적으로 欠이 없어야 한다) 성령(聖靈)이 내주 할 때 성결의 삶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헌신(獻身)의 삶을 의미한다.‘감람으로 짛어서’라는 말씀은 “헌신의 삶을 가리킨다. 한 시각장애인이 등불을 들고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는 나그네가 물었다. ”앞도 못 보는 사람이 등불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그러자 시각 장애인이 말했다.“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등불을 볼 수 있는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불꽃은 접촉부분의 저항(抵抗)이 높아져서 일어나는 현상(現狀)이다. 접촉부분의 저항이 높아지면, 그 부분에 소비전력(消費電力)이 높아져서 열이 많이 생긴다. 그러면, 재질(材質)이 산화(酸化), 즉 타게 되어 저항이 더 높아지고, 결국 빛을 낼 정도까지 되는 것이다.

 

물질이 산화하여 생기는 현상같이 “내가 산화(酸化)하지 못하면 빛은 생기지 않는다. 나의 헌신(獻身)이 결국 교회를 빛나게 하고, 가정과 국가와 인류에 필요로 하는 것들을 발생(發生)시키는 것이다.

 

이번 <그것이 알고 싶다>는 TV방송을 통해 보여준 불꽃 교회 강 목사의 행적은 실로 충격 그 자체였다. 강 목사는 한 때 환자를 고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며 심지어‘노숙자들의 대모(代母)’라고까지 불렸다고 한다.

 

빈민(貧民)의 어머니라는 찬사(讚辭)를 받으며 방송에도 출연했고, 대통령 감사장을 받기도 했으며 가장 감동적인 여성 목회자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하반신 마비 환자를 일으키는 기적을 보이기도 했다는 놀라운 이야기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믿었던 강 목사는 지금은‘요물(妖物)’, 사기꾼’이라 불리고 있었다. 무려 백여 명에 이른다는 피해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강 목사가 신도들에게 돈을 요구했고 그렇게 해서 집 있는 사람은 집 대출을, 전세 있는 사람은 전세 대출을 받는 식으로 돈을 빌려가 갚지 않고 파산(破産)함으로써 모두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일인 당 개인 빚만 각각 7,8천만 원씩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 제보자는 강 목사 때문에 심지어 어머니의 사망보험금까지 잃었다고 진술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베들레헴 타운을 짓겠다’는 얘기는 이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들의 희망을 저당(抵當) 잡아끌어 모은 돈으로 제주도 토지와 불꽃 교회 건물을 자기 명의로 한 후 강 목사는 이를 통해 123억이 넘는 돈을 대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상 해외로 도피(逃避)하며 남긴 편지는 실로 상식적(常識的)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담겨 있었다.

 

늦게까지 방송을 보면서“이럴 수가 있나?”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에 아연실색(啞然失色)하였다. 자기 욕구(欲求)의 충족을 위해 여린 신도의 환심(歡心)을 사서 결국은 욕망을 성취하는 작태(作態)는 성직자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망동(妄動)이다.

 

다음에는 진실(眞實)한 삶을 의미한다.“끊이지 말고”라는 말씀은 진실한 삶을 말한다. 장막의 등불은 저녁에서부터 아침까지 켜야 한다. 세상은 변(變)한다. 그러나 성도의 삶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세상은 바꾸고, 바뀌는 맛에 산다. 그래서 유행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때마다 이익을 얻는 집단이나 사람이 있다. 그것은 돈맛을 아는 모리배(謀利輩)들이다. 그들은 누구를 위한다는 명목을 가지고 있지만 실은 자기를 위한 것이다.

 

자기를 위해 유행을 만들어 세상을 바꾸려는 이런 간악한 자들의 미혹에 성도가 편성(編成)해서는 안 된다. 신앙의 정체성을 가지고 부동(不動)해야 한다. 그런데 벌써 교회 안에는 유행의 물결이 넘치고 있다. 안타까웁게도 교회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진실이 변하는 것은 타락(墮落)이며, 죄악이다. 에베소 교회의‘첫사랑의 변질’은 결국 죽음이었다.“등불을 켜다”라는 말과 “등불을 키다” 라는 말은 다르다. “켜다”라는 말은 'ON'상태를 계속적으로 유지한다는 말이고, ‘키다’라는 말은 ‘OFF' 상태에서 ’ON' 상태로 바꾼다는 것이다.

 

성도는 무엇이든지‘ON' 상태를 어떤 상황에서도 견지(堅持)해야 한다. ’상황윤리자(狀況倫理者)‘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리 안에 머물고 있어야지 버리거나, 떠나면 망조(亡徵敗兆)가 들 수밖에 없다.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견인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승리하는 인생이다.

 

빛이 없어 생물이 살 수 없는 판도라(Pandora)같은 세상에 교회는 에덴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 한 분 한 분이 “빛”이 되어야 한다. 칠흑(漆黑) 같은 어둠을 몰아내고 대명천지(大明天地)를 만드는 사명이 이 시대의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서정태 목사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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