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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강해) 예레미야 29장 10-14절 (미래와 희망을 주려 하심) 하림교회 황규관 목사2015.08.31 20:12
미래와 희망을 주려하심 예레미야 29장 10-14절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세 차례에 걸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 세 차례 중에 본문은 두 번째 포로로 끌려간 후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이미 24장부터 이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그 동안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과 예레미야 사이에, 그리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포로지에 있는 지도자들 사이에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편지들의 내용을 통해 주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우리가 방금 읽은 1절 말씀에는 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 희미하게나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포로지에서 바벨론에게 항거하다가 대량 학살을 당한 후에 주어진 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끌려간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없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잡혀가 있던 장로들과 백성들 중에 일부가 처형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살을 당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메시야관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해 기적적으로 건지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포로지에서도 폭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대량학살이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메시야관과 거짓 선지자들의 충동을 내어버려 두면 포로지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모두 죽은 것을 안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야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보낸 사신인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에게 편지를 주어 포로지에 있는 백성들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이 편지에서 예레미야는 몇 가지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5절과 6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그곳에서 정착하여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집 짓고 텃밭을 만들고 아내를 맞아 자녀를 낳고 살며 그곳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나라의 회복을 꿈꾸고 추진하던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바벨론은 무너지고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은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일을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기에 28장에 선지자 하나냐는 예례미야의 나무멍에를 꺾으며 2년 내에 바벨론이 무너지고 끌려갔던 사람들과 성전기물들이 돌아 올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런 확신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었기에 폭동을 일으켰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아픔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레미야는 또 다시 그 일을 계획하고 추진할지도 모를 포로지의 백성들에게 대항하려하지 말고 묵묵히 살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7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예레미야의 이러한 요구는 포로지에 있던 백성들이나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백성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을 저주하고 무너뜨려도 속이 시원치 않은 판국에 그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는 예레미야만 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쓰면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권세에 복종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기록하기를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롬13:1-3)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라고 하신 이유는 그 모든 권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로마서 13장 4절과 6절 후반에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라고 했고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주의 백성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 시대가 비록 교회에 비협조적이고 도리어 교회를 핍박해도 주의 백성들은 지도자들과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 통치에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 성도들도 로마의 박해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칼을 들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사랑으로 행했고 거룩한 주의 백성의 삶을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일서 5장 3절과 4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라고 했던 것처럼 교회는 승리했고 결과적으로 거대한 제국 로마는 그리스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지에 있는 백성들을 향한 예레미야의 세 번째 요구가 8절에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듣고 믿지 말라” 첫 번째가 그 땅에 정착하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다스리는 자들과 그 성읍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었고 세 번째가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한 것은 이미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지도 않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들은 혈육에 근거하여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포장하여 전했던 자들입니다. 본문에서도 그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한 이유가 동일합니다. 9절에서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회의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들이 잘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간절한 소원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게 한 것입니다. 이 시대 많은 거짓 선지자들도 동일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아도 성도들로 하여금 믿게 하는 능력이 있는 자들입니다. 에스겔도 그의 책 13장 6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들에게 그 말이 확실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그들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라고 하며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 것을 믿게 한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소원을 이루길 원한다면 자신들이 요구하는 행위들을 하라고 합니다. 물질을 바치게 하고 치성을 드리게 하며 그것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합니다. 만약 이루어지지 않으면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여 자신들은 그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간사한 짓들을 일삼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지금도 일명 “가능성의 신학”을 말합니다. 그리고 온갖 성경을 다 같다 붙여놓고 그것을 믿게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무당을 믿는 것에 차이가 없는 짓들을 하나님 무서운 줄도 모르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데나 말씀을 끌어다 붙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해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말을 조금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본문 21절부터 23절의 말씀에서 이들을 심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너희 눈 앞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 바벨론에 있는 유다의 모든 포로가 그들을 저줏거리로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어리석게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라 나는 알고 있는 자로서 증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또한 본문을 보면 거짓선지자는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자신 안에도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너희가 꾼 꿈도 곧이듣고 믿지 말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면 꿈도 꾸는 것입니다. 또 의미 없는 꿈도 자신의 소원을 넣어 의미 있게 해석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너희가 꾼 꿈도 믿지 말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자신의 욕심과 소원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객관적으로 서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거짓 선지자가 되지 않고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거짓확신도 의지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선지자들의 거짓 예언과는 반대로 절망적인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10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70년이 차면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영원히 포로로 있겠다고 하지 않으셨으니 감사할 뿐이지만 70년이 차면 돌아오게 하겠다고 한 이 말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없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 말씀을 적용해 볼까요? 건강이 안 좋은 사람에게 70년 후에 건강이 좋아질 것이라고 하고, 사업이 무너진 사람에게 70년 후에 회복 될 것이라고 하고 전쟁에 나간 가족이 70년 만에 돌아 올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절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을 지어 말한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의 말씀이 육신의 생각을 갖고 근시안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들에게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이 이 땅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저 하늘에서 완성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에게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신앙 생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유다에게 이렇게 행하시는 이유를 말씀합니다. 11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자기 백성을 위한 여호와의 생각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곧 그것은 궁극적으로 그들의 고통과 재앙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행복과 번영을 위하여 계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미래에 이 백성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여 이전에 누리던 특권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 편지를 기록할 당시에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그의 능력에 대한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본문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평안이요 미래와 희망의 말씀을 주신 이유는 10절까지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망이고 근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비록 현실은 그들에게 재앙이었습니다. 육신의 생각과 근시안적 판단으로는 분명히 재앙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그들에게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24장에서 성전 앞에서 있는 두 무화과 광주리에 대해 보았던 것처럼 포로로 끌려간 무화과를 좋게 하여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본문의 평안이라는 말씀이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게 재앙이 아니요 평강이라고 하신 하나님은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의 목적은 “미래와 희망”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을 환란 가운데 넣으신 하나님의 목적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오늘 죄악속의 풍요가 아니라 미래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될 희망이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을 보면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하였으면 요한계시록 12장 6절에서는 교회는 광야에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양육 받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래요 희망입니다. 성도의 제일 되는 소망과 기쁨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천국에서의 영생입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들이 주님을 믿는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의 별똥별 같고, 들의 풀 같고, 그 영광이 풀의 꽃 같은 짧은 이 땅의 삶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푯대를 분명히 하여 우리의 시민권이 있는 하늘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실이 아닌 미래와 희망에 대해 말씀하신 하나님은 그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12절부터 14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라고 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진심으로 여호와를 찾고 또 그에게 기도하며 그에게 나아갈 때에는 여호와께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암 5:4-6;호 2:16-20). 반면에 여호와는 패역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는 백성에 대해서는 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겔 2:3-5; 33:17-20). 그러기에 여호와의 복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특권에는 순종과 충성,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통이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기도하는 백성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포로지에 있는 그들이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믿음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했던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을 지킬 수 없기에 기도하라고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도 사역의 마지막 부분에 제자들과 변화산에 계실 때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것을 고치신 후에 집에 들어와 제자들을 향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스스로 사역하는 동안 새벽과 밤에 기도하셨고 십자가 지시기 전에도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서 성도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하라고 하시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바벨론에서 70년을 지내는 동안에도 그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교제와 교통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포로 됨의 고난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은총이었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받기 전,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는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들은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있을 때 그들의 죄로 인하여 그들이 기도를 한다 해도 듣지 않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기도를 “들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나를 만나리라” 하십니다. 그리고 “돌아오게 하리라” 하십니다. 여기에 고난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낸” 편지 내용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미래와 희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미래와 희망은 회복이며 평안인데 이를 얻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70년이라는 포로기간입니다. 그들의 죄를 끊어내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훈련되었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훈련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의 백성에게 주어진 환란은 복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시간을 통해 미래와 희망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이 땅에서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회복을 주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뿐 아니라 더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인 하늘나라에서의 영광된 삶을 위해 오늘을 살게 하시고 환란과 어려움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를 믿고 오늘 우리가 당한 고난에 절망하지 말고, 사람의 방법으로 살아가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말씀대로 사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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