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공의를 행하라

예레미야 221-9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왕의 집, 왕궁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왕과 귀족들에게 심판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21장에서 시드기야에 대해 심판의 말씀을 하셨다면 본문은 그 이전의 왕들인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단순히 심판에 대한 말씀만을 하지 않습니다. 21장에서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다며 선택을 요구했듯이 오늘 말씀은 주의 백성이 어떻게 행하는 것이 옳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이 시대 주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이 공급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는 이 말씀을 들어야 할 대상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에서 이 말을 선언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라고 하시고는 왕과 신하와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선포하라고 하신 이유는 그들로 말씀을 듣게 하여 그 길에서 돌이키게 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서 말씀하라고 하신 내용은 잠시 후에 보겠지만 예레미야의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이 사명을 감당하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임금들과 권세들, 그리고 주님을 대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고 계십니다. 그것도 심판의 말씀을 전하라고 말입니다. 이 명령은 어제 오늘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구약의 선지자들 뿐 아니라 예수님도 이 사명을 감당하셨고 사도들과 그 뒤를 따랐던 모든 주의 백성들과 모든 세대에게 주어진 명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주의 말씀을 전했던 사람들에게 세상의 칭찬과 영광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환란이요 주의 나라에서는 영광의 열매가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에 게으른 우리들에게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10:14,15)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맡은 모든 주의 백성들이 힘을 다하여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왕들과 종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한 이유는 그들이 이 말씀을 들어야 하고 그 죄악에서 돌이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백성들에게 그런 필요가 있어서 말씀이 증거 되었다면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사람들도 주의 말씀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일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백성들에게 들으라고 하신 주님은 그 땅의 백성들에게 원하셨던 것이 있습니다.

3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향하여 원하신 것은 바로 정의와 공의입니다. 여기에서 '정의'는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이며 '공의''체다카'라고 합니다. 이 두 단어는 대단히 중요한 용어로서 성경에서 종종 함께 연결되어 쓰였습니다. 이 두 단어는 모두 언약의 율법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미쉬파트'는 사사나 왕들이 시행하여야 할 언약 율법과 규례와 관련하여 주로 쓰였고, '체다카'는 여호와의 규범과 표준에 맞추어 바르게 행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왕과 모든 백성은 항상 모든 사실을 다 고려한 후 정의롭고 공의롭게 행동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 말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왕들은 왕으로서 행해야 하는 주요 임무로서 정의를 세우고 백성들을 공정하게 대우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서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구체적인 행동에 대해 말하기를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탈취하고 이방인과 고아를 압제하고 학대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탈취하고 압제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이유는 그들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목적한 바를 본문 13절과 14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3절과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13절부터는 여호야김 왕에 대해서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그는 요시야가 죽은 후에 백성들이 자신의 배다른 동생 여호아하스를 세운 것에 대해 원한이 있었습니다. 바로 느고가 하란에서 본국으로 돌아가다가 여호아하스를 포로로 끌고 간 뒤에 왕위에 올랐는데 이 때 자신을 버리고 동생을 먼저 왕위에 올린 신하들을 숙청했습니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나라가 위기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건축사업을 추진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짰습니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길 원하셨던 하나님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행했던 왕입니다. 그는 백성들을 압제하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했으며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그 피로 그가 행했던 것은 방금 읽었던 말씀과 같은 행위였습니다.

 

본문 말씀을 좀 더 살펴보면 그는 먼저 불의로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다락방을 지었습니다. 여기서 불의와 부정은 2절에서 언급했던 정의와 공의와 정반대의 말입니다. 정의를 말하는 미쉬파트와 공의를 말하는 체다카에 부정접두사 가 붙은 말이 불의와 부정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왕과 지도자들은 불의와 부정으로 자신을 위한 건물을 지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부정과 불의를 행했을까요? 그것은 이어지는 말로 알려주고 있는데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않는 방법입니다. 제가 부교역자 때 섬겼던 목사님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살인적 도둑놈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품삯을 받아 하루를 사는데 그것을 받지 못하여 굶고 심하게는 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얼마 전 그리스도인임에도 이와 같은 일을 행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심하게 슬퍼하고 실망한 일이 있습니다. 일을 한 사람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자신의 급한 일에 모든 돈은 다 썼습니다. 궁지에 몰리면 그럴 수도 있다 싶습니다. 그러나 슬프고 실망스러웠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 안 된다며 품삯을 줄 돈이라는 명목으로 이웃에게 돈을 빌려 그 돈까지 모두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그러한 행동으로 주변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었고 그가 평소에 자신이 교인이라고 말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은 땅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문에서 표현하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불의와 부정을 행한 근본적인 목적은 나를 위하여입니다. 호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 큰집을 짓고 넓은 이층을 만들어 그곳에서 잔치하며 창문을 넓게 만들고 백향목으로 집을 꾸미고 붉은 색을 칠하여 자신의 부를 자랑하였습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가난한 자의 수고로 벽돌을 쌓고 과부들의 눈물로 집을 꾸미며 죄 없는 자의 피로 벽을 칠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무죄한 자의 피로 자신의 성을 쌓는 행위를 한 것이고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는 행위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림교회 성도들을 이러한 악을 행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410절에서 하나님은 아우 아벨을 죽인 가인을 향해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하고 무죄한 자의 핏소리가 하나님께 호소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무엘하 21장을 보면 다윗의 노년에 3년간의 기근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3년간 기근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 사울이 왕이었을 때에 기브온 사람들을 모두 없앨 목적으로 학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핏소리가 하늘에 들렸고 사울의 후손 일곱을 목매달아 죽이고서야 기근에서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누군가의 핏소리가 하나님께 들리지 않도록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의를 행한 것일까요?

그것의 첫 번째 원인으로 그들의 교만 때문입니다.

다니엘서 4장에 보면 느부갓네살의 간증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에게 이루어진 일에 대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4:2)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평안히 궁에 거할 때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은 그 높이가 하늘까지 닿은 큰 나무와 그 아래서 많은 사람과 짐승들이 꼴을 얻고 쉼을 얻고 있을 때 한 순찰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도끼로 나무를 베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을 다니엘이 해석해 주기를 그 나무는 느부갓네살인데 교만하였다고 말하며 그 이유로 그를 넘어뜨리고 7년간 짐승처럼 살게 되며 그 후에 정신이 돌아와 세상을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줄 알게 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느부갓네살에게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27)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느부갓네살이 교만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겸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겸손이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교만한 자들에게는 법도 없고 가난한 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흔한 말로 안하무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불의를 행하면서도 그 형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원 할 줄 알았던 권력이 10년 밖에 가지 못하고 화려할 줄 알았던 자태도 10일을 넘지 못한다는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자신에게는 미치지 않을 줄 아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4장을 계속 보면 느부갓네살에게 1년의 기회를 허락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 동안 그는 공의를 행하며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의지와 자신감과는 상관없이 7년간 짐승처럼 사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도 은혜가 있는 것은 그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시고 그 7년의 기간 후에 하나님을 아는 백성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겸손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 안에 가득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그들이 끊임없이 불의를 행했던 두 번째 원인이 있습니다. 아주 심각한 원인이 있습니다.

21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뿌리박힌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습관이란 말은 어쩌다 실수한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의 경향성을 의미합니다. 요한일서 3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습관이 들었느냐는 어떤 결과를 얻느냐를 결정합니다. 책 읽는 습관은 가진 사람은 박식하게 될 것이고, 운동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한 습관을 가진 사람은 거룩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이고 불의한 습관을 가진 사람은 부끄러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신앙은 거룩한 습관이고 그 습관은 천국을 얻을 것입니다.

 

어제 뉴스에 미국 법원에서 30년 만에 판사와 강도의 사이로 만난 사람의 이야기가 보도되었습니다. 그들은 중학교 시절 아주 친하게 지냈던 사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판사로 한 사람은 강도짓을 하다가 잡혀 피의자로 섰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만나기 전의 삶의 모습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은 정직하고 바른 습관을, 한 사람은 불의하고 악한 습관을 따라 살았고 그 맺은 열매를 가지고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고 다니엘도 습관을 따라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습관을 가졌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칠년마다 초막절에 모든 백성이 모여 성경을 읽으라고 했으나 한 번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이 돌아 온 후 에스라 때에야 처음 성경을 읽는데 그 일로 인해 영적 대각성이 벌어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쓰고 인을 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거룩한 습관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으라고 안타깝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29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땅이여를 세 번이나 외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말씀을 들으라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심판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들으라는 내용은 그 다음절인 30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그들의 죄로 인해 그도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것이며 후손도 왕위에 올라 유다를 다스릴 자가 없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들으라고 하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음으로 돌이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입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며 그들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심판이 아니라 복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어떻게 돌이켜야 하는 것일까요?

 

4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21절에서 지적했던 듣지 않는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고 하신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세상의 요구와 대립해도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시작이 듣고 준행하는 것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행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오늘 제목과 같습니다.

15절입니다.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이 구절을 표준새번역은 네가 남보다 백향목을 더 많이 써서, 네가 짓기를 경쟁하므로, 네가 더 좋은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고 마시지 않았느냐? 법과 정의를 실천하지 않았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유다 멸망시기의 왕들 중 여호야김은 건축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는데 그런 그에게 주님은 백향목으로 도배를 하고 화려하게 꾸민다고 해서 좋은 왕이 될 수 있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아버지 요시야 왕의 행적과 진정한 형통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요시야 왕은 지금 책망을 당하고 있는 여호야김을 비롯한 유다 멸망시기 왕들과 대조되고 있습니다. 여호야김은 자신의 왕적 권위를 근사한 궁궐을 지음으로써 과시하고자 했습니다. 반대로 요시야는 왕으로서 지녀야할 진정한 가치 기준과 수행해야 할 책무를 바로 깨달아 행했습니다. 그는 압제나 불의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삶을 즐기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공의과 정의를 먹고 마시는 음식처럼 소중히 여겼으므로 고통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설 줄 알았습니다. 요시야의 이러한 공의와 정의의 정치 철학은 하나님께 대한 경건하고 진솔한 신앙의 기반 위에서 가능했음은 물론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했고 잘 섬겼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과는 달리 그의 아들들이 백향목을 많이 쓰고 건물을 크게 지은 모든 행위는 왕의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대상만 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6절에서는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머리이나 내가 반드시 너로 광야와 주민이 없는 성읍을 만들 것이라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 언급된 '길르앗''레바논'은 숲이 울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왕의 궁전은 이들 지역에서 나온 목재로 지어졌기 때문에 때로는 '레바논 숲의 집'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웅장하고 장엄한 곳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는 한, 여호와는 그곳을 '광야''거민이 없는 성'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건축해야 할 믿음의 집은 백향목으로 지은 건물처럼 세상의 화려한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바보취급을 받은 공의와 정의로 지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렇게 지어진 신앙과 삶의 집이 영원하고 영원할 줄 믿고 그렇게 사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마치기 전에 16절을 마지막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 18
    Aug 2015
    12:37

    (예레미야 강해) 예레미야 27장 1-11절 (멍에를 메라) 하림교회 황규관 목사

    Bystorybible Views2734 file
    Read More
  2. 18
    Aug 2015
    12:28

    (예레미야 강해) 예레미야 26장 1-7절 (실로같이 되리라) 하림교회 황규관 목사

    Bystorybible Views2571 file
    Read More
  3. 02
    Sep 2015
    13:04

    예레미야 25장 12-15절 (바벨론을 벌하리라)

    By하림 Views1678 file
    Read More
  4. 26
    Jul 2015
    16:43

    (예레미야 강해) 예레미야 24장 1-10절 (내가 잘 돌볼 것이라) 하림교회 황규관 ...

    By하림 Views921 file
    Read More
  5. 19
    Jul 2015
    13:50

    2015.07.19 로마서 8장 28-30절 (미리 정하신 것) 하림교회 김상문 목사

    By하림 Views501 file
    Read More
  6. 12
    Jul 2015
    13:33

    (예레미야 강해) 예레미야 23장 32-40절 (엄중한 말씀) 하림교회 황규관 목사

    By하림 Views2360 file
    Read More
  7. 05
    Jul 2015
    16:30

    (예레미야 강해) 예레미야 22장 1-9절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

    By하림 Views2420 file
    Read More
  8. 28
    Jun 2015
    18:30

    예레미야 21장 1-14절 (생명의 길, 사망의 길)

    By하림 Views3046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 72 Next
/ 72

Address: 서울특별시 강남구 학동로77길 49 하림교회 (청담동 10번지)Tel: 02-456-3927Email: haezra@hanmail.net
Copyright 2000 스토리바이블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Nature w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