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설교] 에베소서 2장 11-22절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by 하림 posted May 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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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에베소서 211 - 22

 

오늘은 성령강림주일로 기념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은 말 그대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얻게 하셨고 우리 안에 영원히 계시며 우리와 영적인 교통을 계속해서 이어가시고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는 것에 감사하는 날인 것입니다. 이 날이 언제부터 유래했으며 어떻게 우리에게 임하셨고 그 결과로 주어진 은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면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둘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13절부터 14절을 통해 말씀해 주셨는데 성부의 예정하심과 성자의 피 흘려주심, 그리고 성령의 보증해 주심의 역사 때문입니다. 이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오늘은 성령하나님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50일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불같이 임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우리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날을 기억하여 성령강림절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날은 유대인의 절기 중에 하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일 년에 세 번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해야 하는 절기가 있습니다. 그 절기를 신명기 1616절에서 말해주고 있는데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무교절에 여호와 앞에 나아갔습니다. 무교절은 유월절과 함께 있는 절기입니다.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 동안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이 무교절의 첫날을 초실절이라고 하여 이스라엘에서 가장 먼저 추수한 보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초실절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이 초실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이 오순절입니다. 이 오순절에는 밀을 처음 추수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날도 초실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절기상 초실절은 두 번 있습니다. 하나는 보리를 처음 드리는 날, 또 하나는 밀을 처음으로 드리는 날입니다. 첫 번째 초실절에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면 두 번째 초실절인 오순절은 성도를 본격적으로 추수하는 날이 된 것입니다. 밀을 처음으로 추수하여 드렸던 이 날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본격적인 추수의 때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밭작물을 비롯하여 과일을 추수하고 드리는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이 절기를 장막절, 또는 수장절이라고 하여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하는 절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개의 절기 중에 오순절의 시작은 출애굽기 19장입니다. 출애굽기 19장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지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 오십일 때 되는 날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고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은 율법의 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 돌 판에 새겨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순절 성경강림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에 율법을 새겨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령 강림을 예언하시면서 요한복음 1426절에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에 임하셔서 주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모세에게 돌에 새겨진 율법을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케 하신 법궤 안에 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우리의 심령에 주셔서 영원히 떠나지 않으시고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율법은 돌에 새겨진 율법이라면 성령은 우리의 심령에 새겨진 율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일은 이미 예고되었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순절 전날에 여섯 군데의 성경을 읽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에스겔서 3626절입니다. 기록되기를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읽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보이십니까? 시내산에서 돌에 율법을 새겨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은 장차 심령에 율법을 새겨 주실 것을 예고하셨는데 이 말씀을 오순절 전날 읽었다는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력한 섭리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에스겔서의 말씀은 장차 성령을 부어 주셔서 성도의 심령에 말씀을 새겨 주실 것에 대한 강력한 예고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출애굽한 후 시내산에 도착하여 산에 오른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 율법을 받았는데 그 만남에 대해 출애굽기 1918절에서 묘사하기를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순절 전날에 읽었던 여섯 군데의 성경 중에 하나가 출애굽기 19장이었고 에스겔서 1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도 불 가운데 임하셨던 하나님을 말씀하시지만 에스겔서 1장에서도 동일하게 불 가운데 임하신 주님을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서 1장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시는 장면인데 그 장면을 보면 하나님은 그룹 가운데 계신 분으로 등장합니다. 그룹은 사자, 독수리, 송아지, 사람이라는 네 개의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그룹의 모양의 여러 가지 묘사 가운데 13절과 14절에서는 또 생물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햇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나며 그 생물들은 번개 모양 같이 왕래하더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순절에 이 두 군데 성경을 읽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날에 임하실 성령에 대한 강력한 예표였던 것입니다. 그 예표는 사도행전 22절부터 3절에서 실현되었는데 사도행전 22,3절은 그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였습니다. 기록되기를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불 가운데 임하여서 모세를 만나주시고 율법을 주셨던 주님은 이제 오순절 성령 강림도 불 가운데 임하셔서 그들에게 새로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이 율법은 새로운 관계에 근거하여 주어졌고 실행되어지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5절과 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새로운 관계가 맺어졌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되기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성령강림 사전 전에도 있었습니다. 성령강림은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 주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약속해 주신 새로운 관계 설정에 근거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주님은 잡히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다가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15:14,15)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먼저 종에서 친구라는 관계로 재설정하셨고 그 관계를 위해 불 가운데 성령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시내광야에서 시작된 오순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삼대 절기 중에 하나로 정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절기 때마다 그 절기의 의미를 잊지 않고 더 풍성하게 하기위해 삶 속에 규례를 만들어 지켰습니다.

 

예를 들어 유월절에는 어린양을 잡아먹었고 무교절에는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에 집안에 있는 모든 누룩을 제거하였으며 7일 동안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어 광야생활을 기억했습니다. 또한 초막절에는 집 밖에 초막을 짓고 7일 동안 거주했으며 성전에서는 7일 동안 재단 앞에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다 새워놓고 금 그릇에 실로암 물을 담아 그것에 부으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이렇듯 나름의 의식을 통해 그 절기의 의미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순절에도 오순절만의 의식이 있었습니다. 이 오순절에는 유교병 두 개를 가지고 성전에 가서 요제로 바치는 행위를 했던 것입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에는 죄를 상징하는 무교병만을 먹었는데 이 때는 무교병이 아니라 유교병 즉, 누룩이 들어간 빵을 두 개 만들어 성전에서 요제로 드렸습니다. 이 빵은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무엇을 의미하기에 죄를 상징하는 누룩을 넣은 빵을 화제로 모두 태워드리지 않고 요제로 드렸던 것일까요? 그것의 의미는 정말로 신비하고 놀랍습니다.

 

먼저 요제로 드려진 것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요제는 하나님 앞에 제물을 흔들어 올렸다가 내리는 제사입니다. 제물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존재하는 제사입니다. 먼저 두 개의 빵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려진 주의 두 개의 빵이 의미하는 유대인과 이방인인 모두 하나님께 드려진 존재로서 이제는 주를 위해 사는 존재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사는 자가 된 것입니다.

 

또한 유교병은 아직 죄가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아직 죄가 있는 상태란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영적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빵 두 개 중 하나는 유대인, 또 하나는 이방인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둘 다 누룩이 있다는 것은 유대인도 죄인, 이방인도 죄인입니다. 이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이 두 개의 빵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날이 오순절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벌어진 사건이 유대인과 이방인에 모두에게 새로운 약속, 생명의 복음이 전파된 사건입니다.

 

정말 재미있고 놀라운 것은 무교절의 첫날이었던 첫 번째 초실절에 보릿단을 처음으로 드리던 새벽 시간에 주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면 두 번째 초실절이었던 오순절에는 성전에서 두 개의 빵이 드려질 때 성령이 강력하게 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성령 강림 사전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이 구별이 없이 하나님께 드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13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13절부터 19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이해가 되셨습니다. 두 개의 누룩 있는 빵이 하나님께 드려져 하나님의 권속이 된 것의 의미를 말입니다.

 

이렇게 두 개의 빵이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하는 또 다른 성경을 이 때 읽었는데 그것은 룻기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순절 전날에 읽었던 여섯 군데의 성경 중 룻기가 포함 됩니다.

 

룻기의 엘리멜렉과 그의 아내 나오미, 그리고 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의 가정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서 살다가 기근을 겪었고 그 일로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모압 땅으로 이주했습니다. 그곳에서 오르바와 룻이라는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잘되어 간다고 생각될 때 이 집안의 모든 남자는 죽고 세 여자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에 풍요를 허락하십니다. 이에 나오미는 두 자부를 그 땅에 남으라고 하며 자신은 베들레헴으로 가기로 작정합니다. 이에 오르바는 자신의 민족과 신에게로 돌아갔고 룻은 나오미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베들레헴으로 왔습니다. 그 때를 성경은 보리추수 할 때라고 말하는데 이 때 돌아온 룻은 이삭을 줍기 위해 나왔다가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고 그와 계대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것은 유대인이었던 보아스와 이방이었던 룻의 만남입니다. 마치 오순절 날에 누룩이 들어간 빵 두 개를 성전으로 가져와 요제로 드리듯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님 앞에 드려져 그들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나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방인과 유대인이라는 상징성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 이방인의 결혼을 의미합니다. “보아스의 이름의 뜻은 유력한 자라는 뜻이고 의 이름의 뜻은 친구입니다. “유력한 자, 예수님은 멸시받고 의지할 때 없던 이방인을 친구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그와 결혼한 것입니다. 그래서 앞부분에서 요한복음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 드렸던 것처럼 주님은 우리를 친구라 하리라고 하셨고 후에 그 친구와 혼인하기 위해 처소를 예비하고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이 베들레헴이라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장소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드신 분으로 빵집인 베들레헴에서 생명의 빵으로 태어나셔서 성령이 주어진 모든 자에게 생명을 주신 분임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자 하심입니다. 그 주신 생명으로 우리를 베노니”, “슬픔의 아들에서 베냐민”, “권능의 아들, 오른손의 아들”(35:18)이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오순절에 이 말씀을 읽은 것은 그 때가 보리 추수가 끝나고 밀을 추수 할 때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룻이 베들레헴에 왔을 때는 보리 추수 때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절기인 첫 번째 초실절 때인 것입니다. 이 때부터 오십일을 지난 후가 오순절입니다. 그런데 이 사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주셨고 40일째 되는 날 감람산에 오르셔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약속한 것, 즉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초실절부터 오십일을 세며 기다렸습니다.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다가 오순절이 가까이 다가오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고 오십일 째가 되는 날 오순절 축제를 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이미 룻기에서 예고하였습니다. 룻기 28절에서 보아스는 룻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말한 보아스의 말을 들은 룻은 그 말대로 행하였습니다. 그의 그런 행동을 룻기 223절에서 묘사하기를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주의하여 볼 표현이 있습니다. 보아스는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라고 했고 룻은 보리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보리추수기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고 밀 추수가 시작되는 오순절에 성령을 주셨으며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초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복음을 전하여 3천명, 5천명의 성도들이 돌아보고 수많은 무리들이 돌아올 때까지 있었습니다. 마치 밀 추수가 끝날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의 중요한 의미는 영혼들의 추수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영혼의 추수와 함께 동시에 벌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마치 추수한 밭에서 알곡은 창고에, 가라지는 불에 던져 넣듯이 성령의 사역은 이를 동시에 이루고 있습니다. 비록 최종적인 추수는 초막절이 상징하는 종말에 완전히 끝나지만 보리와 밀의 추수와 함께 가라지를 불에 넣는 일이 이때도 벌어지듯이 이 때도 추수와 심판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순절 전날에 읽었던 여섯 군데의 성경 중에 두 군데가 이 심판과 관련이 있습니다. 먼저는 이사야서 24장입니다. 이사야서 24장 전체의 말씀은 이 땅을 벌하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또한 시편 11953절을 읽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로 말미암아 내가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혔나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주심으로 두 가지 사역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전하였을 때 성령이 임하여 구원을 입기도 하지만 성령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경강림주일을 감사로 예배드리는 우리들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단순히 이 날은 기억하고 행사를 치르는 것에서 만족하면 되지 않습니다. 이 날을 주신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영혼구원의 사명입니다. 요한복음 435절은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하시면서 하신 말씀이지만 추수기에 곡물을 추수하듯이 추수기인 지금, 성령의 시대에 추수꾼인 주의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여 영혼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절을 맞아 다시 한 번 다짐합시다. 우리에게 맡겨진 밀밭인 세상을 돌아보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영혼들을 추수하는 우리가 되기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