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별거 없구만
로마 역사의 가장 격변기는 1,2차 삼두정치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로마가 오랜 공화정에서 전제정치로 넘어가는 과정 중에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사건이 많이 발생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율리우스 시저, 클레오파트라,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로마’등 영화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만큼 흥미로운 시대였습니다.
특히 1차 삼두정치는 로마 제일의 부자였던 크라수스, 시골 기사가문 출신 폼페이우스, 전통적 귀족이었던 율리우스가의 시저였습니다. 이들 중 폼페이우스가 초기 로마의 실세로 떠올랐을 때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로마의 골칫거리였던 해적들을 소탕하고 동방에서 로마를 계속 괴롭혔던 폰투스왕국과 아르메니아왕국, 그리고 파르티아를 정치군사적으로 해결하고 알렉산더 사후 가장 강력했던 셀류쿠스를 무너뜨렸습니다.
그야말로 폼페이우스는 로마의 대세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에게 유행했던 말이 “폼페이우스, 내가 제일 잘나가!”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당시 왕자의 난으로 서로 싸우던 유대의 두 왕자 힐카누스2세와 아리스토불르스2세는 폼페이우스에게 각각 줄을 댑니다. 금 400달란트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상납하겠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폼페이우스에게 유대를 바친 것과 진배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중간에 유대의 반란이 있었으나 무력으로 진압하고 손쉽게 유대를 손에 넣은 폼페이우스는 예루살렘성전에 대한 궁금증이 발했습니다.
신전에 신상이 없다는 것이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성전에 가서 제물을 드리고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는데 그중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하루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이었던 폼페이우스가 들어간 것입니다. 이 사건은 유대인들의 분노를 사는 행동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던 폼페이우스는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온 후에 이렇게 예기 했습니다.
“뭐, 별거 없네”라고 말입니다.
원래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어야 하나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성전이 파괴될 때 사라지고 없어 새로 지은 성전의 지성소는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폼페이우스의 이 말은 이 시대 교회와 성도의 삶을 보는 비기독교인들의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은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비친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는 별것이 없는 모습입니다. 세상은 교회와 성도들에게서 돈이나 높은 지위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폼페이우스가 성전에 들어갔을 때 금 2,000달란트가 있었지만 그것은 건들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보고 싶었던 것은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세상도 그렇습니다. 세상은 웅장한 교회건물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세속적 힘이 아닙니다. 그 안에 있어야 할 하나님입니다. 교회의 위기라고 말하는 이 시대에 “뭐, 별거 없네”라는 이 말을 생각해 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림교회는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곳이라 '뭔가 있는 교회' 입니다.
그곳에 계신 하나님께서 아침에 반갑게 맞아주셔서 행복한 평안이 마음에 가득 차 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전심으로 주를 찾고, 믿지 않는 분들이 교회에서 주님을 만나실 수있도록 돕는자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